지난 2월 8일, 미국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0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주인공은 팝 스타 배드 버니였다. 그는 공연이 끝나갈 무렵, 중남미 국가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한 뒤 '함께할 때 우리는 아메리카(Together, We are America!)'라는 문구가 적힌 축구공을 관중석을 향해 던졌다. 미국의 이민자 추방 반대 시위가 점점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배드버니는 이미 이민자 탄압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온 인물이었다. 배드버니가 1억명이 넘게 시청하는 하프타임 쇼에서 전한 메시지는 존중보다 논쟁을 먼저 불러왔다. 문화,종교 등 개인의 다양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내세워 온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기에는 낯선 광경이다. 미국의 다원주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두 개의 무대로 나뉜 슈퍼볼 하프타임 쇼
미국의 라틴팝 스타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미국 북동부에 있는 섬, 미국-스페인 전쟁 이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태어나 자랐다. 최근 푸에르토리코에는 정전 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나, 미국은 열악한 전력망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해당 사안을 외면하고 있다. 배드 버니는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희망의 빛을 찾고자 하는 민중의 바람을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그는 대부분의 곡을 스페인어로 공연했고, 공연 말미 전광판에는 '증오보다 강력한 것은 사랑(The only thing more powerful than hate is love)'이라는 메시지가 등장했다. 이민자들을 배척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배드 버니의 무대를 두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볼 하프타임쇼 역대 최악의 공연 중 하나"라며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의 게시글을 올린 뒤 자정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덴마크령 그린란드, 베네수엘라까지 북미대륙이 성조기로 뒤덮인 합성 지도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이민자도 존중해주길 바라는 배드버니의 입장에 맞서는 듯한 행동이었다.
미국의 보수 성향 단체 터닝포인트 USA는 슈퍼볼 하프타임쇼와 같은 시간,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진 가수 키드 록을 내세워 '올아메리칸 하프타임쇼'를 별도로 유튜브 채널에서 개최했다. 보수 성향의 일부 시청자들은 공식 하프타임 쇼 대신 이 쇼를 시청했다.

[슈퍼볼 공연 중인 배드 버니 © gettyimages/에스콰이어코리아]
이민자 탄압 정책을 향한 서로 다른 입장
미국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온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어쩌다 이렇게 서로를 향한 비방의 장이 되었을까. 배드 버니의 공연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하프타임쇼 초청 가수로 배드 버니가 확정됐을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터무니없다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배드 버니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 수상 소감으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 OUT"을 외쳤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탄압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었다.
미국 이민 정책에 모든 아티스트가 배드 버니와 동일한 입장을 지닌 것은 아니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으로 5살 때 미국에 온 이민자 래퍼 니키 미나즈는 지난 달 1월, 트럼프 계좌(정부가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에게 비과세 투자 계좌를 만들고, 초기 종잣돈으로 1000달러(한화 약 143만원)를 지원하는 내용)출범 행사에 등장해 트럼프 대통령의 1호 팬이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니키 미나즈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여성 래퍼"라며 호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니키 미나즈가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였던 2018년에는 정부의 이민 단속 정책을 비판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7년 전에는 이민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미국의 이민 정책을 대하는 입장과 논쟁이 복잡한 층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니키 미나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AP연합뉴스]
미국의 다원주의는 확장되었는가, 분열되었는가
배드 버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대략 1억 2,490만 명이 시청했다.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대부분의 곡이 스페인어로만 진행된 공연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무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슈퍼볼 하프타임 공식 쇼가 진행되던 같은 시간, 이 쇼를 거부하는 입장의 또 다른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이 유튜브에서 펼쳐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슈퍼볼 하프타임 공식 공연 직후 영토 확장 이미지를 올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풍경은 다양성이 존중받는 미국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미국의 다원주의는 지금, 확장과 분열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스포츠 이벤트가 사회적 메시지의 전쟁터가 된 이 현상은, 미국 사회가 지금 어떤 질문에 놓여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더 넓은 사회로 확장 중인지, 아니면 분열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되어가고 있는지. 미국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는 중이다.
by Editor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