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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동향] 살아있는 화석 산양, 11월 멸종위기종으로 선정
2025.11.21

몇 년 전부터 우리의 생활 반경 안에서 자주 목격되기 시작한 산양들. 깊은 산속에 서식해야 하는 산양들이 연이은 폭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해 도로변과 마을 주변까지 내려온 것이다. 눈 속을 헤매다 지쳐 폐사하거나 울타리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채 굶어 죽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산양은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 속 야생동물의 생존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시가 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일 산양을 2025년 11월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했다. 한반도 산림 생태계를 대표하는 초식동물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위기를 알리고,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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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산양  ⓒ 국립생태원]



200만 년의 시간을 버텨온 생명, 위기에 서다

산양은 이름과 달리 양이 아니라 소과(牛科)에 속하는 중형 포유류로, 절벽이나 암석지대 같은 험준한 환경에 특화된 신체 구조를 지녔다. 암수 모두 뿔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로 깊게 갈라진 발굽은 마치 전문 등산 장비처럼 바위에 밀착돼 경사가 가파른 지형도 민첩하게 오를 수 있게 한다. 특히 산양은 약 200만 년 전 지구 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의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 4종 만이 존재한다. 그중 한국에 서식하는 종은 1종으로 개체군의 대부분이 강원도·경상권의 산악 지대에 집중 서식하고 있다. 


원래 산양은 한반도 전역에 넓게 퍼져 살고 있었다. 그러던 산양은 1900년대 초 산업화와 무분별한 포획, 산림 훼손으로 개체군이 급격히 줄었고, 1964년 폭설로 인한 대량 폐사는 산양 개체군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산양은 1968년 천연기념물로, 1998년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산양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앞에서 무너진 생명

,최근 몇 년 동안 산양의 생존을 위협한 가장 심각한 요인은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다. 애초 멧돼지의 이동을 막아 질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지만, 주요 도로를 따라 산악 지형을 가로지르는 형태로 길게 설치되어 산양·노루·담비·반달가슴곰 등 다양한 야생동물에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남겼다. 


물과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오던 산양들은 울타리를 마주하며 방향을 잃었고, 일부는 구조적으로 막힌 공간에 갇혀 탈진하거나 굶주리다 폐사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나아가 울타리는 서식지 간 유전적 교류를 막아 개체군의 건강성을 떨어뜨리고,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대피할 공간을 빼앗았다. 먹이를 찾아 계절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야생동물에게 울타리는 단순한 '방해물'이 아니라, 서식지를 강제로 조각내고 생존 전략 자체를 무너뜨리는 인공 경계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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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 울타리를 따라 걷고 있는 산양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실제로 2023년 1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폭설과 ASF 차단 울타리로 인해 무려 1,022마리의 산양이 폐사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추정한 국내 개체수 약 1,600여 마리를 고려하면 약 75%의 산양이 사라진 셈이다. 이 대량 폐사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기후재난과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결합해 야생동물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정부

대량 폐사 사태 이후 정부는 한국환경연구원, 국립생태원과 함께 ASF 울타리의 실효성과 생태적 피해를 재검토하고자 정밀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울타리가 방역 목적을 넘어 야생동물의 생존에 구조적인 장애를 초래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면서 정부는 본격적인 울타리 철거 로드맵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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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로드맵 © ASF 중앙사고수습본부]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방역 효과는 유지하면서 생태영향은 줄이는 방향으로 광역 울타리 관리방안을 확정했다. 광역 울타리 관리는 크게 철거와 존치로 구분되는데 철거는 ▲1단계 우선 철거, ▲2단계 철거 확대, ▲3단계 중장기 철거 검토 등 3단계로 구분해 내년 1월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 겨울 폭설에 대비해 울타리 철거 전 현재 시범사업으로 부분 개방된 국립공원 구간을 확대하여 야생동물의 동선을 확보하기로 했다.



매달 한 종씩 조명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그 의미는?

생물다양성은 단순히 동식물의 숫자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생명의 생존을 책임지는 '안전망'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면 자연의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져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기후변화는 다시 생물종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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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먹이를 찾으러 내려온 산양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러한 위기를 알리기 위해 매달 한 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선정해 알리고 있다. 이는 우리가 매월 주목해야 할 만큼 많은 생물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폭염과 가뭄, 폭설과 홍수, 산양의 떼죽음까지 지구는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왔다. 


우리가 멸종위기 생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을 애도하기 위함이 아니다. 생물다양성이라는 안전망과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기 전에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양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지구 생태계 전체의 회복력을 되살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by Editor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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