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_title
기획기사, 인터뷰
[ESG와 제헌절] 제헌절에 다시 읽는 헌법 속 ESG
2026.07.16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에 속하며 정부 수립과 헌정 질서의 출발에 뿌리를 둔 날이다. 2026년 7월 17일, 대한민국은 올해 78번째 익숙한 제헌절을 맞지만 이번 제헌절은 작년 제헌절과 다르다. 올해부터 제헌절은 '공휴일'이다.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올해 제헌절은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18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단순히 쉬는 날이 하나 늘어난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약속을 다시 들여다볼 계기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제헌절의 의미를 되돌아보자.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대한민국 헌법공포기념 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 그 가능성과 한계

헌법의 힘은 좋은 가치를 ‘선언’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장치'에 있다. 그리고 이 헌법을 ESG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면 최근 기업과 사회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다루는 주제들이 이미 조문 곳곳에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SG 관련하여 헌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권리는 '환경권'이다. 헌법 제35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이 환경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1980년 제 8차 개정에서 처음 신설되었고, 이후 1987년 현행 헌법에서 지금의 형태로 정비되었다. 환경을 개인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명시한 것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진전이었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1항 © ESG.ONL]



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환경권은 헌법학에서 '추상적 권리'로 분류된다. 헌법에 권리가 적혀있어도 그 조항만으로 곧바로 소송에서 구제 받기는 어렵고, 개별 법률로 구체화되어야 실제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헌법 제35조 제2항은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선언은 출발점일 뿐, 이를 뒷받침할 별도의 절차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셈이다.



헌법 119조가 담은 오래된 질문

기업의 역할과 경제 질서에 관한 조항도 있다. 헌법 제 119조 제 1항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를 보장하며, 제 2항에서는 국가가 균형 있는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 조화를 위하여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경제를 기본적으로 자유에 맡기되, 성장의 열매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소수의 거대 경제 주체가 시장을 좌우하지 않도록 국가가 균형을 잡는다는 원칙의 조항은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부터 도입되었다.

이 조항은 '기업이 주주의 이익만을 좇아야 하는가, 아니면 노동자와 지역사회와 같은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지속가능성 논의의 중심에 놓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즉 기업이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와 지역사회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헌법에서부터 명시된 논점임을 알 수 있다. 



공시의무화, 선언을 이행으로 만드는 장치

헌법에 명시된 권리와 조항을 살피면 가치의 선언과 그 이행은 다른 문제이며, 이행은 측정과 공개, 검증하는 절차를 통해 실현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지속가능성 규범이 지나고 있는 국면이 정확히 이 지점이다. 오랜 기간 자율에 맡겨졌던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정보 공개가 정해진 기준에 따른 ‘'공시 의무'로 전환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ISSB)가 2021년 설립되어 2023년 공시기준(지속가능성 공시·기후관련공시)을 내놓았고, 유럽연합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을 시행 중이다. 한국도 2026년 2월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orea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KSSB)가 공시 기준서 제1·2호를 확정했으며, 금융위원회는 2028 사업연도부터 연결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약 58곳을 시작으로 ESG 공시를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기업의 미재무정보를 재무제표에 준하는 신뢰성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흐름도 있다. 유럽연합은 2026년 규제 부담을 덜어 주는 방향으로 공시 일정과 범위를 손질하고 있고, 국내 재계도 준비 기간과 비용을 이유로 속도 조절을 요구해 왔다. 선언을 이행 장치로 옮기는 일이 그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헌법재판소 전경 © 헌법재판소]



최초의 헌법이 제정되고 78번째 해가 지났지만, 오래전부터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과 경제민주화가 현실에서 만들어 내는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권리와 책임은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법률과 절차가 마련됐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오늘날 지속가능성 규범 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좋은 가치는 측정되고 공개될 때 힘을 얻는다는 헌법 78년의 교훈은 이제 막 선언에서 의무로 넘어가는 ESG 공시에도 적용된다.


by Editor L

이 기사를 공유할게요
확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