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이면 수십만 명의 취업 준비생이 채용 시즌을 맞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 그리고 AI는 점점 사람의 채용이 필요했던 자리를 조용하지만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2026년이다. 기술 전환의 수혜와 피해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정의로운 전환은 더 이상 탄광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채 시즌마다 조용히 줄어드는 신입의 자리
국가데이터처의 '한국 사회동향 2024'는 AI로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일자리가 약 270만 개로 전체 일자리의 1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AI로 인해 향후 5년간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1억 7,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전망했다. 언뜻 보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숫자의 총합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사라지는 자리에 있는가'이다. 변화를 맞은 기업들은 기존 직원을 내보내는 방식보다 애초에 새로 뽑지 않는 채용 방식을 선호한다. 2025년 미국 노동시장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은 도입 1년 6개월 이후 도입하지 않은 기업 대비 신입 채용을 7.7% 줄였다. 반면 경력 채용은 상대적으로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 신입 채용 감소세는 더 가파르다. 취업 플랫폼 캐치가 분석한 결과 2025년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43% 급감했다. 특히 IT, 통신 분야는 같은 기간 67% 나 신입 채용을 줄였다. 공인회계사 합격자 중 절반 정도가 사실상 미취업 상태에 놓이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1~3년 차 신입 회계사가 맡던 단순 반복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회계사무소들이 신규 채용 자체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취업난이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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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을 설계한 나라들
새로운 기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새 일자리가 찾아오지는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노동 전환의 혜택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다수가 책임지게 된다.
독일 노동계는 탈석탄을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핵심으로 판단하여 2018년 노동자, 기업, 정부, 그리고 지역 이해당사자 28명으로 구성된 '탈석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6개월간의 논의 끝에 2038년까지 탄광과 석탄발전소를 폐기하는 로드맵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을 약속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탄광 화력발전소 소재 지역에는 20년간 재정을 투자하기로 했다.
AI 전환 국면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독일 노동연구소(IG Metall)는 전환 과정의 핵심 요소로 참여, 공동 결정, 재교육, 단체협약,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꼽으며 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의 전문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AI 시대에 맞춘 선제적 재원 마련에 나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AI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높은 재직자와 실업자를 대상으로 3,000만 유로를 배정했다. 이 중 1,000만 유로는 자동화 대체 위험이 큰 재직자의 기술 향상에, 나머지 2,000만 유로는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의 디지털 역량 개발에 투입된다. 이미 실직한 사람뿐 아닌, 아직 일하고 있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까지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대응은 이제 막 시동을 걸고 있다. 2026년 3월 19일 새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하면서 1년 넘게 중단됐던 노사정(노동자, 기업, 정부) 사회적 대화가 재개됐다. 'AI 전환에 따른 노사 상생위원회'에서는 AI 도입으로 변화하는 일자리 환경에 대응하는 노사 협력 모델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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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의 조건
해마다 3월의 공채 시즌이 돌아오면 지원자는 '어떤 스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노동 전환의 비용이 개인에게만 부담되지 않도록 하는 것, 전환 기간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그리고 기업-사회-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합의 구조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공정'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소수의 이익과 다수의 불안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ESG의 'S'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