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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ESG와 기후공시] 엔터테인먼트와 기후 공시: 즐거움에 더한 '새로운 초대장'
2026.02.12

우리는 매일 평균 3~4시간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한다. 드라마를 보고, 예능을 보고, 스포츠 중계를 보며 웃고 울고 시간을 보낸다. 지금껏 그 시간 속에서 즐거움을 전하는 콘텐츠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기후변화가 더 이상 특정 분야의 이슈가 아닌 지금, 한 가지 질문을 덧붙여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이 콘텐츠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남은 온실가스는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은 엔터테인먼트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엔터테인먼트가 가진 영향력과 확장성을 활용해, 더 많은 시민이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주제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지속가능한 즐거움을 위한 기후 공시

일반적으로 '정보'는 소비자의 안목을 넓히는 도구가 되고, 이는 다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는 식품을 살 때 영양 성분표를 확인하고, 달걀 껍데기에 찍힌 난각번호를 통해 사육환경과 생산 이력을 살핀다. 옷을 살 때도 원료와 제조국 정보는 기본값에 가깝다. 이런 정보는 소비를 위축시키기보다 선택의 기준을 넓혔고, 어느새 소비자가 제작 및 운영 과정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건 익숙한 관행이 됐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역시 이런 정보가 곁들여진다면, 시청자에게는 '알아두면 흥미로운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 흐름은 이미 스포츠 산업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축구 클럽 중 일부는 경기장 운영 과정에서의 에너지 사용,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공개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구단은 원정 이동 감축과 친환경 경기장 운영, 팬 이동과 연계한 배출 저감 캠페인을 시도 중이며, K리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이는 스포츠를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포츠를 더 지속가능하게 즐기기 위한 실험에 가깝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100%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하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 populous]



콘텐츠의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을 측정·공개하는 기후 공시를 시도한 바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 역시 일부 제작물을 중심으로 촬영·제작 과정의 탄소 배출을 산정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제작 가이드라인과 파일럿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디즈니는 ESG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관리 대상으로 명시하고, 촬영 현장의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추진 중이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역시 제작 현장의 에너지 사용과 이동 감축을 지속가능성 전략의 한 축으로 다루고 있다. 아직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콘텐츠의 '메시지'뿐 아니라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스튜디오 드래곤 지속가능성 보고서 © 스튜디오 드래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기후 정보의 '범위'와 '신뢰성'이다. 제작 현장의 물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완성된 콘텐츠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탄소 발자국' 역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화질 스트리밍을 위해 가동되는 데이터 센터의 전력 소모까지 투명하게 공개될 때, 엔터테인먼트의 기후 영향력은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수치가 제작사의 자의적인 계산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제작 가이드라인이나 표준화된 산정 툴을 통해 도출된다면, 시청자가 느끼는 정보의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후 정보 공개를 통해 형성될 새로운 문화

이러한 기후 정보 공개는 규제나 의무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과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다. 어떤 제작사는 이동을 줄이는 방식으로, 어떤 제작사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또 어떤 제작사는 불가피한 배출을 다른 방식의 감축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작자들 사이에는 '누가 더 창의적으로, 덜 배출하며 콘텐츠를 만들었는가'라는 새로운 축의 경쟁이 형성될 수도 있다.


시청자에게도 변화는 강요가 아니라 새로운 참여의 형태로 다가온다. 에피소드별 배출량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비교하며, 좋아하는 콘텐츠의 제작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기후 위기를 무겁게 설교하지 않아도, 일상의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효과를 낳는다.



엔터테인먼트는 사회적 상상력을 만드는 산업이다. 그 상상력에 '기후 정보'라는 한 줄이 더해진다고 해서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이 어떤 세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함께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엔터테인먼트의 기후 정보 공개는, 더 많은 시민이 기후 대응에 간접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새로운 초대장에 가깝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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