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소비했을까?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SSG몰, 알리 익스프레스, 무신사, 올리브영 등 우리가 즐겨찾는 많은 쇼핑몰들이 세일을 진행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둘러싼 끊임없는 세일 릴레이에 우리의 지갑도 끊임없이 열렸다. 뜨거운 열기에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역대 최대 판매액을 기록한 무신사는 1시간마다 15억 원 넘는 상품을 판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된 미국 역시, 추수감사절부터 블랙프라이데이, 온라인 쇼핑몰 할인 행사인 사이버먼데이까지 올해는 1억 8,690만 규모의 인파가 쇼핑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유통시장은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전년도보다 매출이 8.3% 증가한 117억 달러, 사이버먼데이에는 전년보다 6.3% 증가한 142억 달러의 온라인 매출이 기대된다며 한껏 들뜬 분위기다.
[무신사 블랙프라이데이 포스터 ⓒ 무신사]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블랙프라이데이는 그저 갖고 싶은 물건을 싸게 구매하는 좋은 날일까? 저렴한 가격으로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고, 수많은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않을까?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날인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기도 하다. 반소비주의 운동 역시 이날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그 의미가 크다. 오늘은 11월 마지막 금요일 '블랙프라이데이'와 그 다음주 월요일 '사이버먼데이', 그리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살펴보자.

[미국 월마트의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홍보 포스터 ⓒ Walmart]
블랙프라이데이 + 사이버먼데이 vs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블랙프라이데이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할인율을 자랑하는 쇼핑의 날이다. 블랙이란 표현은 연중 처음 회계 장부에 흑자(black ink)를 기록하는 날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보낸 미국인들은 다음날인 금요일 휴가를 내어 상점을 찾고, 물건을 쓸어 담는다. 블랙프라이데이의 온라인 버전인 사이버먼데이는 블랙프라이데이 다음 첫 월요일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이 연간 인터넷 쇼핑 매출 금액이 가장 크며, 추수감사절부터 4일의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직장인들이 직장 내 빠른 인터넷으로 쇼핑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 경 시작된 사이버먼데이는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된 현재 블랙프라이데이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위키백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위 기념일과 반대로 과도한 소비로 인한 환경 파괴, 노동 문제, 불공정 거래 문제 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유행과 쇼핑에 중독된 우리를 돌아보는 날이다. 1992년 광고계 종사자인 테드 데이브에 의해 시작되어 행동주의적 예술가가 모인 비영리 단체 '애드버스터즈 미디어 재단'이 매년 홍보를 이어가는 이날은, 한국에선 1999년 녹색연합이 주도해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에 동참하는 브랜드들
소비를 촉진해야 할 브랜드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에 상품 판매를 중지하거나, 지속가능한 소비를 이끄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화물 방수 천을 리사이클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과 미국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그 대표적인 예다. 프라이탁은 가방 교환 플랫폼 'S.W.A.P(Shopping Without Any Payment)'를 런칭하고, 2020년부터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몰 접속 시 이곳으로 연결되게 했다. 더 나아가 작년과 재작년엔 전 세계 공식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에서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동안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대신 2023년엔 무료 가방 대여 캠페인을 진행했고, 24년엔 오프라인에서 S.W.A.P의 가방 교환 서비스를 체험하도록 독려했다. 올해는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취리히에 새로운 가방 수리 센터를 열고, 이를 기념해 전 세계 일부 매장에서 선착순 무료 가방 수리 서비스를 진행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를 게재하며 유명세를 탄 파타고니아 역시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공식 홈페이지에서 의류 수선 서비스와 수선 방법을 소개하고 전국의 풀뿌리 환경 보호 활동을 알린다. 또한 직원들이 직접 왜 파타고니아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세일을 하지 않는지, 환경 보호를 위해 왜,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유쾌하게 설명하는 '악플 읽기' 콘텐츠를 공개하기도 했다.

[프라이탁의 새로운 리페어스튜디오 ⓒfreitag]

[파타고니아의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 ⓒ파타고니아코리아]
이밖에 캐나다 뷰티 컴퍼니 데시엠의 브랜드 디 오디너리는 블랙프라이데이가 짧은 세일기간과 높은 할인율로 충동구매를 야기한다며, 11월 한 달 동안 제품을 할인하는 '슬로우뱀버' 캠페인을 진행한다. 피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구매를 부추기는 '가짜 혜택 구별 가이드'도 제시했다.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 플랫폼 29cm는 올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기념해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 유튜버 짐미조와 함께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한 인터뷰 콘텐츠를 공개했다. 비건 제품 등 환경 관련 상품을 추천해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과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과 YONO 소비 트렌드
반소비주의는 이렇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기점으로 본격 확산됐다. 반소비주의는 소비 자체를 거부하거나, 사회, 환경 문제를 줄이기 위해 재활용하고, 정치적, 사회적 신념에 따라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를 불매하기도 한다. 90년대 시작된 이 반소비주의는 프리거니즘*의 등장이나 미니멀 라이프의 유행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프리거니즘: free와 veganism의 합성어로, 버려진 음식과 물건을 섭취하고 사용하는 반소비주의, 반자본주의 운동

[『저소비 생활』ⓒ 알에이치케이코리아]
최근 각광받는 트렌드 'YONO (You Only Need One)'는 현재의 소비와 소유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몇 해 전 인기를 끈 YOLO(You Only Live Once)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품질이 좋은 물건을 사 오래 사용하며, 구매할 땐 중고 거래를 찾는 것을 지향한다. 국내 중고 거래 주요 애플리케이션 이용량이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점도 이 트렌드를 증명한다. 최근 '저소비 코어'라는 형태로 불리기도 하는데, 일본 유튜버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을 다룬 『저소비 생활』이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틱톡의 ‘#Underconsumptioncore 해쉬태그 영상의 조회수가 총 6,000만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 지속된 고물가와 경기침체, 저성장 때문에 급부상한 트렌드이기는 하지만 이것 만이 이유는 아니다. 소비를 줄이는 젊은 세대는 친환경 소재의 물건을 사용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로컬 제품을 구매하며, 패스트패션을 거부한다.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소비의 한 측면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아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맞아 이에 동참하는 브랜드와 관련된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았다. 이미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수도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른 당신이라면, 내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는 나'를 다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구매하지 않음으로 실천하는 가장 간단한 환경 운동이 될 것이다.
by Editor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