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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기고] 80억명이 함께 깨는 퀘스트 '기후위기' : 게임에 담긴 기후 이야기
2025.10.24

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세계 게임 시장은 2025년 약 1,889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영화나 음악 산업보다 더 큰 시장이다. 수십억 명이 접속하는 게임은 이제 대중문화의 핵심 축이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게임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세상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은근히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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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게임기 '게임보이'와 게임팩 ©Nintendo]



'문명6'을 하면서 그 사실을 체감한 적이 있다. 이 게임은 한 번 시작하면 밤새 플레이하게 된다는 극한 중독성으로 한 때 밈까지 되었던 게임으로 문명을 발전시키며 도시와 국가를 키워나가는 시뮬레이션이다. 재밌는 건, 후반부에 접어들면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러 과학자와 경제 전문가들이 공언한 것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게임에 몰입해 플레이 해 보면 상황은 다르다. 주변 도시와의 경쟁 속에 오랜 시간 쌓아온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자원은 항상 부족했고, 인구와 산업을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에너지가 절실했다. 결국 게임 속에서 석탄 발전소를 늦게 폐쇄할 수밖에 없었고, 주변 문명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치만 보면서 과감한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게임 속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이 얼마나 힘들고 정치적인 선택일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이 현실보다 먼저 에너지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인지 가르쳐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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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자연재해를 주제로 다룬 문명6 © 매일경제]



'파이널 판타지 VII'은 이 문제를 훨씬 더 극적으로 풀어낸다. 게임 속 거대 기업 '신라(Shinra)'는 행성의 생명력을 '마코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추출해 도시와 무기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그 결과 행성은 서서히 병들고, 결국 파멸의 위기에 직면한다. 게임 전체는 디스토피아적 배경 위에서 전개된다. 1997년에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VII'은 3D 그래픽과 영상 연출의 도입으로 콘솔 게임의 '영화화'를 이끈 혁신적 작품이자 "기업의 탐욕과 에너지 남용이 지구를 위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서사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화석연료에 중독된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이는 예언처럼 다가온다.


더 친숙한 사례도 있다. 포켓몬스터도 기후변화 담론에 올라탔다. 2019년 출시된 '포켓몬 소드•실드'는 산업혁명의 상징 영국을 모티브로 한 '가라르'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이 버전에서는 굴뚝 모양의 가스 포켓몬 '또가스'가 등장한다. 마치 산업혁명 시절의 공장 굴뚝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다. 원래는 분홍빛이었던 산호초 포켓몬 '코산호'는 이 버전에서는 하얗게 변해버리고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 바위 타입에서 유령 타입으로 바뀌며, '멸종'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많은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속에도 기후변화의 흔적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포켓몬 제작사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공식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으며, 초기 시리즈에선 포켓몬을 남획하고 활용하는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생물다양성과 공생의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게임 속 배경은 화력 발전소에서 풍력•태양광•지열 등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포켓몬은 귀엽고 무해하다'는 우리의 인식을 깨고, 이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콘텐츠마저 우리가 기후위기를 비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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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멸종하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산호초 포켓몬 ©Pokémon]



이 세 가지 사례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니지만, 공통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명6'은 대응의 어려움을 체험으로 느끼게 하고, '파이널 판타지 VII'은 에너지 착취의 구조적 문제를 드라마처럼 각인시키며, '포켓몬 소드•실드'는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세계에서 기후위기의 상징을 보여준다. 게임들은 세대와 장르를 가로질러, 기후위기가 단순한 과학 보고서 속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삶과 맞닿은 현실임을 알려준다.


앞으로도 게임은 대중문화 산업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도 게임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한 서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자원 고갈, 오염, 멸종, 재난 같은 이슈가 다양한 방식으로 은유되어 있다. 게이머들은 이런 장면을 무심코 스쳐 가면서도, 사실은 기후위기의 무게를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게임 클리어'가 아니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더 많은 자원을 파밍할 것인지, 아니면 팀플레이처럼 모두가 함께 협력해 지구라는 맵을 지켜낼 것인지. 기후위기는 단순히 가상의 선택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수행 중인 공동 퀘스트다. 누군가의 희생이나 치트키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파티원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하는 레이드와도 같다. 게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결국 이것이다. 지금의 플레이 방식이 곧 내일의 결과 화면을 바꾼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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