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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지속가능보고서 읽기] 지구가 녹으면 아이스크림도 녹는다, 벤앤제리스
2025.10.13


글로벌 스킨 케어 브랜드 '이솝(Aesop)'의 모든 매장에는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싱크대가 있다. 한국에도 진출한 패스트푸드 브랜드 '파이브가이즈(Five Guys)' 매장은 모두 무료 땅콩을 제공한다. 그리고 매년 단 하루,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브랜드도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Jerry’s)'다. 



벤앤제리스의 브랜드 액티비즘

벤앤제리스는 1978년 창업자 벤 코헨(Ben Cohen)과 제리 그린필드(Jerry Greenfield)가 주유소를 개조해 첫 매장을 열었다. 두 창업자는 회사의 성공이 주민을 비롯한 지역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보답의 의미로 시작한 '프리 콘 데이'는 매년 하루를 골라 전 세계 매장에서 방문객 모두에게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날로 벤앤제리스를 대표하는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고객에게 감사를 표하는 아기자기한 이벤트,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만 보고 벤앤제리스가 마냥 귀여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벤앤제리스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가치가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는 것을 알면 냉동고에 있는 초콜릿 칩 쿠키 도우 아이스크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벤앤제리스의 첫 번째 프리콘데이 ⓒ 벤앤제리스 홈페이지]



브랜드 액티비즘이란 브랜드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브랜드 액티비즘에 기반한 벤앤제리스의 경영 철학은 최근 창업자 제리 그린필드가 회사를 떠난 방식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Unilever)가 벤앤제리스를 인수할 때, 경영진은 자사 경영 방침에 유니레버가 관섭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유니레버 역시 이 조건에 동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벤앤제리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벤앤제리스가 두 차례 유니레버를 제소했고, 갈등이 격화된 끝에 지난 9월 17일 그린필드가 벤앤제리스를 완전히 떠나기로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47년간 벤앤제리스에서 일해 온 직원으로서 더 이상 남을 수가 없다”라는 이유에서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 액티비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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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그린필드의 사임 발표문 ⓒ 벤 코헨의 X]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벤앤제리스는 '애매하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보다 '소수의 열렬한 팬'을 만드는 것을 더 추구한다.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 담긴 벤앤제리스의 신념은 내부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을까?



행복을 팔면서 불행을 만들면 안 된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뜻하는 DEI는 글로벌 기업이 매진하는 주요한 기업가치이다. 이는 단지 회사가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 진출의 기회를 베푸는 시혜적 관점에서의 입장이 아니다. 현대 조직의 성공에 DEI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DEI는 직원 이탈의 위험을 절반 가까이 줄인다거나, 경영진 다양성이 평균 이상인 기업의 혁신 수익이 평균 이하 기업보다 높다는 결과가 줄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브랜드 인식 개선에도 영향을 주어 매출 성과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직원을 다양하게 구성할수록 복잡하고 개별적인 시대의 문제를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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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업장 전체 인종 및 성별 구성 그래프 ⓒ  벤앤제리스 2023 지속가능보고서]



벤앤제리스 역시 인종, 성별, 젠더 등 개인을 구성하고 정의하는 모든 특성이 존중받을 때 벤앤제리스의 사업과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신념이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제대로 적용되는지 점검하기 위해 벤앤제리스는 2020년부터 미국 내 생산시설과 사무직 직원의 성별과 인종 비율을 공개하고 있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미국 원주민, 혼혈 인종을 명시하고 있으며, 백인의 비율이 가장 크다. 2020년 보고서에 인종 비율을 공개한 이후 그 비율은 조금씩 낮아지는 중이기는 하다. 


벤앤제리스의 DEI정책은 고용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벤앤제리스는 아이스크림 원료 공급망에서도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가치주도소싱(VLS, Values Led Sourcing)'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VLS는 공급망 다변화, 사회적 기업과 공유가치 창출, 재생농업과 동물복지, 농부와 농장노동자의 성공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벤앤제리스는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원료를 공급받고 있다. 아이스크림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벤엔제리스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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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앤제리스 탄소발자국 그래프 ⓒ 벤앤제리스 홈페이지]



지구가 녹으면 아이스크림도 녹는다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제조할 때 생기는 탄소발자국의 53%는 유제품에서 나온다. 유제품을 제외한 다른 원료가 그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운송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보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월등히 많은 것이다. 벤앤제리스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00% 감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에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은 빼고 싶어도 빼기 어려운 핵심 재료다. 그래서 벤앤제리스는 '케어링 데어리 프로그램(Caring Dairy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2기에 접어든 이 프로그램은 농장의 경제적 성공, 건강한 토양과 깨끗한 물, 동물복지, 저탄소 유제품이라는 가치를 추구해 결과적으로 환경에 덜 부담을 주는 낙농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장은 목초지의 '피복작물법(Cover Cropping, 토양 휴지기에 재배 작물 외의 식물을 심어 토양을 보강하는 것)'과 '보존경운(Conseravtion Tillage, 경작한 작물의 뿌리와 줄기 등의 잔재물로 토양을 덮는 경운법)'을 실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건강한 토양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소가 소화할 때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줄이는 사료를 배식하여 목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2023년 케어링 데어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장은 48곳으로, 이 놀장들은 약 1억 9천만 리터의 우유를 생산하며 미국 유제품 공급망의 84%를 담당했다.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낙농업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벤앤제리스는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만들려는 시도도 이어오고 있다. 이미 재료 자체에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는 소르베 아이스크림, 우유 대신 해바라기 버터를 사용한 논-데어리 제품군을 선보인 바 있다. 우유를 사용하지 않는 논-데어리 아이스크림은 2016년 4개 제품으로 시작해 유제품을 사용한 기존 제품의 맛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 종류를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아이스크림은 계절을 막론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행복을 전하는 음식이다. 음식이 담고 있는 문화적 의미를 사회·환경적으로 실현하는 브랜드 액티비즘의 성공적인 사례를 살펴보고 싶다면 직접 벤앤제리스의 사회 및 환경 평가 보고서(SEAR, Social & Environmental Assessment Report)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by Editor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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