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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인터뷰
[기고] 결제창 앞에서 만나는 기후위기
2025.09.29

나는 얼리어답터다. 새로운 테크에 관심이 크고, 전자기기도 종종 산다. 신제품이 주는 궁금증을 풀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을 채우는 취미다. 그러나 가끔은 이 취미이자 소비습관이 비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전자제품은 생산·운송·판매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나 취미 차원에서 선택한 소비가 기후 친화적이지 않다는 자각이 들곤 한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이런 고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료 중 한 분은 F1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기후변화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죄책감 때문에 수백만 관객을 기록한 ‘F1 더 무비’를 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고 했다. 거대한 팀을 꾸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름을 펑펑 쓰고 트랙을 수도 없이 도는 F1 머신들, 그리고 누구는 차를 사고도 몇 번 바꿀까 말까한 타이어를 몇 바퀴 돌고나서 수차례 타이어를 갈아야만 하는 스포츠라니. 한편으로는 일리 있는 고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것까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어 크게 웃어 넘긴 적이 있다. 좋아하는 문화를 소비하는 일과 기후위기를 공감하고 대응하는 일이 충돌하는 순간, 누구든 한 번쯤 맞닥뜨리는 딜레마다.


골똘히 꼬리를 무는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잘 먹고 잘 사는 모든 활동이 결국 온난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더 큰 문제의식에 닿게 된다. 즉, 소비라는 행위 자체가 곧 기후위기와 연결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기후문제를 해결하자는 활동과, 나의 소비가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모순적 감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리고 던져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렇다. 인류 문명의 번영과 기후위기 대응은 과연 양립 가능한 문제일까?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흔히 보이는 농담처럼, 타노스가 지구에 와서 인류 절반을 날려야만 인류는 탄소중립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개인적 성찰을 넘어 구조적 회의로 번져간다. 지금까지 경제 발전은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많이 만들고, 많이 팔고, 그렇게 개인의 소득은 늘어나고 다시 전보다 큰 소비로 이어졌다. 이렇게 집단 전체가 번성하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라는 믿음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 모델의 끝은 어디일까? 그 과정은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의 시대에 이런 되먹임 구조는 오히려 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 모델 대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 와중에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일로 알게 된 한 인플루언서에게 약소한 기념품을 드리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만 받겠다며 선물을 거절했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대단치 않은 물건이었지만, 그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 자체를 다르게 바라본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생일 선물에 관한 그의 이야기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이나 기프티콘을 보내지 말고, 본인이 추천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기부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쉽게 버려지거나 낭비되는 재화 대신, 사회적 가치와 나눔으로 선물의 의미를 확장한 셈이다. 이런 작은 문화적 실천이야말로 소비를 중심으로 짜인 패러다임에 균열을 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힌트도 있다. 애플은 2023년 자사 최초의 탄소중립 제품으로 애플워치를 내놓았다. 물론 탄소중립 인증의 방식을 두고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탄소중립 제품군을 기획하고 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기대가 생겼다. 이는 곧 내가 소비활동을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약 내가 소비하는 대다수의 상품과 재화가 탄소중립으로 인증받고 시장에 나온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소비와 탄소중립이 공존하는 미래가 실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타노스가 등장해 인구 절반을 날릴 필요도 없다.



ESG / ESG오늘 / 이에스지



물론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류를 번성하게 한 소비 중심 자본주의를 단번에 뒤엎어 새로운 체제를 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체제의 부산물이었던 온실가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이제는 전 세계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인간 문명을 조성하는 동시에, 인간이 살기 좋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산업혁명에 인류가 쏟았던 노력보다 더 큰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는 결코 개인적 실천이나 소수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런 그림을 그리고 나아가는 데에는 동참과 연대가 근본적인 동력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패션 매장에서 카드를 꺼내기 전에, 전자제품 매장에서 간편결제 QR코드를 띄우기 전에 잠시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일 부터다.


결국 먹고 사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소비든, 나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취미와 여가활동이든,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사회적 과제까지도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소비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소비를 다시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어떤 소비를 하느냐, 그것이 곧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말해준다.



by 김원상(기후솔루션 언론 커뮤니케이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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