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는 물리적 배경, 스타디움이다. LA의 BMO 스타디움은 단순한 축구장이 아니다. 2018년 개장 당시부터 친환경을 목표로 설계된 이 22,000석 규모의 경기장은 지속가능성의 물리적 증거다. 일반적인 스타디움 건설과 다르게 BMO 스타디움은 착공 전부터 리드인증(LEED,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실버등급 획득을 전제로 한 통합적 설계를 적용했다. 리드인증은 '미국 그린빌딩 위원회(U.S.GBC, Green Building Council)'가 제공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 시스템이다. 건물의 설계, 건설, 운영,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검토한 인증결과는 에너지 절감, 물 절약, 탄소배출 감소 등 건물을 짓고, 관리하는 과정의 개선을 목표한다. 인증은 인정(Certified, 40-49점) → 실버(Silver, 50-59점) → 골드(Gold, 60-79점) → 플래티넘(Platinum, 80점 이상)의 네 단계로 구분되는데, BMO 스타디움은 계획보다 높은 골드 등급을 획득한 상태다.
[BMO스타디움 전경 ⓒBMO Stadium]
스포츠 시설 분야에서의 리드 인증은 더욱 까다롭다. 대규모 관중 수용, 높은 에너지 소비, 복잡한 인프라 등 건물이 가져야 할 속성이 친환경 설계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LAFC의 소유주 중 한 명인 톰 펜(Tom Penn)은 골드 인증 발표 당시 "프로젝트 초기부터 환경친화적인 스타디움 건설에 전념했다"며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건물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지속가능성이 만드는 경제적 선순환
이처럼 리드 골드 인증을 받은 BMO 스타디움의 친환경 기술들은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친환경 건물로 건축된 스타디움은 에너지 소비를 30% 줄였고, 물 소비량을 40% 절감해 연간 77만 갤런 이상의 물을 절약하고 있다. 빗물 재활용 시스템도 있다. LA의 건조한 기후를 역이용해 가끔 내리는 집중호우의 빗물을 모아두었다가 잔디와 조경에 활용한다. 방문객들이 보는 푸른 잔디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지혜가 숨어 있다. 지구온난화 지수가 낮은 냉매를 사용한 기계식 조건화 시설도 갖추고 있고, 옥상 설계를 통해 열섬 효과를 완화하는 장치도 설계되어 있다.
BMO 스타디움의 친환경 운영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친환경 기술 도입으로 인한 운영비 절감 효과는 상당하다. 줄어든 에너지 소비 30%와 물 사용량 40%이 아낀 비용 절감액은 어디로 갈까? 바로 LAFC 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재투자된다. 손흥민 시리즈 2편에서 확인한 각종 지역상생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재정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 투자는 2028 LA 올림픽을 대비한 장기적 투자로 연결될 수도 있다. 2028년 개최 예정인 LA 올림픽 중 BMO 스타디움은 축구와 라크로스 등의 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20년부터 지속가능성을 올림픽 개최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BMO 스타디움의 친환경 운영 노하우는 202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BMO스타디움에서의 데뷔전에 임한 손흥민 ⓒLAFC]
440대 자전거가 바꾸는 LA의 일상
BMO 스타디움을 둘러싼 풍경 중 하나는 경기가 있는 날 스타디움 주변에 줄지어 세워진 자전거들이다. 440개의 자전거 주차 공간이 만들어낸 일상이다. 미국 LA는 자동차에 크게 의존적인 도시 중 하나다. BMO 스타디움은 이런 환경에 도전하고 있다. 자전거 전용 도로부터 전기차 충전소까지 스타디움 자체를 지속가능한 모빌리티의 실험장으로 쓰고 있다. 실제 주차장의 5%는 전기차 충전소로 구성되어 있고, 20%는 전기차 대응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또한 LA시와 LAFC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지역사회 재생, 개발 프로젝트인 '마이 피구에로아(My Figueroa)'의 일환으로 스타디움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 도로도 조성됐다.
흥미로운 것은 팬들의 반응이다. 처음에는 LA에서 자전거로 경기장에 올 수 있다는 것에 의아해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전거 타고 오는 것을 하나의 경기관람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 전후로 자전거 타고 주변 음식점을 들르는 새로운 루틴까지 나타났다.
BMO 스타디움이 구현하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지속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초기 투자 단계에서 친환경 기술에 더 많은 돈을 쓴 스타디움은 중장기적으로 운영비를 절감하고, 투자비를 회수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절약된 돈이 지역사회 공헌으로 이어져 브랜드 가치까지 상승시킨다는 점이다. '친환경 = 비용 부담'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친환경 = 경영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흥민이 선택한 팀은 단순히 좋은 팀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이었다. 국내 스포츠 시설들도 이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앞으로를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볼 지점이다.
by Editor L